지난 6월, 김선정 형제가 서울 선교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아 아내 김정희 자매와 함께 봉사를 시작했다. 김선정 회장은 과거 부산 선교부에서 청년 토론 선교사로 봉사했다. 그는 귀환 전, 하퍼 부산 선교부 회장과 최종 접견을 하며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저는 회장님께 후에 제 가정을 이루게 되면, 모든 자녀가 선교사로 봉사하도록 가르치고, 아내와 함께 언젠가 부부 선교사로 봉사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귀환 후, 그는 김정희 자매를 만나 결혼했으며, 학업과 가족 부양을 병행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이들 부부는 세 자녀를 얻었으며, 복음의 가정에서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선교사로 봉사했다. 아내 김정희 자매는 세 자녀가 모두 선교사로 봉사하던 중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두 개의 한의원을 운영하였다. 김 자매는 사업으로 한창 바삐 보내던 중, 남편이 선교부 회장 부름을 요청받게 되자 모든 사업을 중단하는 결단을 내렸다.
김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내의 대담한 용기와 신앙이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지금껏 내려주신 주님의 무한한 축복에 감사드리기 위해 ‘인생의 십일조’를 바치고 싶었고, 부부 선교사를 준비하였는데, 막상 선교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게 되니 아주 놀랍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세 자녀 모두 선교사로 봉사했고, 이제 아내와 함께 선교부 회장 부부로 봉사하며 전 선교부 회장님과 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김선정 회장은 막 개종하였을 때를 떠올리며, 그때의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하나님께 충실한 종이 되고자 다짐한다. “저도 한때는 겸손하게 참된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찾으려 노력했던 조셉 스미스와 같았습니다. 그때 지녔던 초심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축복과 봉사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심지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지라도, 그분께서는 저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시며 훈련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부족함과 약점이 많지만, 힐라맨의 2,000명의 충성스러운 용사들처럼 끝까지 주님께 충성하는 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육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완전한 충성을 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사이야서 15:7)”
그는 조국에 돌아와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표하며, 선교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땅 대한민국에 복음을 전해주신 분들과, 이제는 연로하시지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초기 개척자 성도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은 전세에서 함께 했던 사랑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기에 선교사업은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사업이며, 하나님 아버지께도 절실한 일입니다.”
덧붙여, 그는 이 시험의 시기에 성약의 길을 굳건하게 걸으며 유혹을 이길 힘을 얻기를 소망한다. “이생은 시험의 기간입니다. 우리는 이 엄격한 시험의 기간을 잘 준비하고, 노력하여 통과하기 위해 이 지상에 왔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간증은 매일 사탄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며, 시험의 기간 동안 항상 행복하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어려운 도전과 고난은 우리가 침례 성약을 지키고, 봉사하며, 의롭게 생활함으로써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간증을 나누었다. “조셉 스미스는 이 후기의 선지자이자 선견자였습니다. 기원전 550년경에 니파이가 예언한 몰몬경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임을 증거합니다. 저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살아 계시고, 현대의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김선정 회장은 1982년도에 침례를 받고 부산 선교부에서 봉사한 후, 김정희 자매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김 회장은 미국과 일본에서 공부하였으며, 1990년대 말부터 미국에 거주했다. 이들은 슬하에 자녀 세 명과 여섯 명의 손자녀를 두고 있다. 김선정 회장은 기업에서 영업 총괄로 근무했으며, 두 기업의 총괄책임자를 역임했다. 또한 과거 세미나리 교사, 와드 서기, 장로정원회장, 고등평의원, 감독단, 감독 등으로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