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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양심의 목소리

신앙이 사회에 중요한 이유에 대한 5부작 연재 중 세 번째 해설 기사

“인간의 실재에 대한 거대한 질문은 …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의 마음과 양심으로부터 끊임없이 찾는 노력은 모든 인간 활동에서 가장 고귀한 것 중 하나이다.” —윌프레드 맥클레이[1]

사회는 소란스럽다. 혼란스럽다. 존재하는 개인 수만큼 많은 믿음과 견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생각을 알리고 싶어한다.

그 내용이 정치, 교육 또는 경제에 관한 것이든지 간에,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을 갖는 쟁점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종교인들 역시 동일한 쟁점에 관해 큰 열정을 보이며, 주로 자신의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관점을 제안한다. 종교가 인간의 삶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만일 종교적 양심의 목소리가 없다면 이러한 사회적 쟁점들의 해결 범위는 더욱 축소될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우리가 어디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모두가 자유롭게 발언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혜는 자연히 나타나게 되어있다.

모든 사회는 저마다의 특정한 시간대에 존재한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자신의 시야 안에 갇혀,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원리와 가치가 빛을 잃어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때로 사회는 변화하고, 수정되며, 향상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 나은 자신을 일깨워주고 사회의 양심으로서 행동하게 하는 것은 주로 종교적인 목소리이다.

공정성, 평화, 자유 및 일반적인 복지 문제에 관한 시민들의 담론은 흔히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각계 각층 대중의 삶 전반에서, 심지어 종교에서조차도 분별력을 억압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겸손한 결정적 다수는 극단주의를 구분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신앙의 목소리가 현 시점을 뛰어 넘어 공공 토론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삶에 과거의 통찰력을 가져다 주고, 서로에 대한 성스러운 의무를 상기시키며, 인간으로서 우리의 더 높은 염원을 알려 줄 것이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목사로서 지닌 깊이와 웅변술을 통해 인종 및 시민 정의 운동을 발전시켰다.

말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멀리 간다. 종교적인 양심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실제로 살고 있는 삶에서, 그리고 천천히, 조용히 가난을 덜어 주고, 대중의 건강을 향상시키며, 가족 관계를 강화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이런 방식으로, 양심은 이념이나 정당의 요구에 타협하지 않는다. 그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할 뿐이다.

종교를 통해 도덕적인 인도와 실제적인 해결책이란 두 가지 유익을 얻을 수 있기에 종교는 사회에서 항상 의미 있는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그 예는 실로 많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기독교 도덕 정신을 빌어 대영제국의 노예 매매를 폐지시켰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분단된 국가를 치유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에 의지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이라는 종교적 원리를 펼쳐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다. 이 외에도 계속해서 열거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물결에 저항하였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종교적 양심의 목소리가 늘 대중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자신의 최고의 선을 추구할 때 사회는 더 올바르게 된다. 우리는 선의를 기치로 건 여러 중대한 일들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자를 적으로 낙인 찍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실제로, 사회 목표가 서로 조절되면 서로가 도움이 되는 협력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신봉하는 믿음에 문제를 제기하는 비평가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함으로써 우리가 지닌 힘을 보여주게 된다. 결국, 우리는 “진리는 그 자신의 방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사랑이 이상의 경합에서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믿는다.[2]

조화란 단지 하나의 선율이 아니라 서로 다른 파트로 구성된다.

궁극적으로는 결국 우리에겐 양심밖에 남지 않는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 즉 물질적인 소유, 사회적인 지위, 부는 다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도덕적 잣대가 되는 믿음과 가치,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우리 마음의 보이지 않는 곳 — 우리가 삶에 덧붙인 의미와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게 하는 내부 방침 — 이 우리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들이다.

이 양심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타고난 권리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다른 자유들은 의미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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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윌프레드 맥클레이, “Honoring Faith in the Public Square,” Christianity Today, Nov. 21, 2012.

 [2] History of the Church, 5:498~499참조; 1843년 7월 9일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297쪽]에서 인용, “인류가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그들을 압제한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일입니까? 결코 옳은 일일 수 없습니다. 내가 만일 그들에게 내 방법이 더 낫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없다면, 나는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 자신의 방법대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이성의 힘을 가지고 내가 믿는 바를 남도 믿도록 강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리는 그 자신의 방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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