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도

캐슬린 존슨 아이어링 자매가 세상을 떠나다

아이어링 자매는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의 아내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제일회장단 제2보좌인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의 아내인 캐슬린 존슨 아이어링 자매가 2023년 10월 15일 일요일, 유타주 바운티풀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였다. 

캐슬린은 1941년 5월 11일에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이 시릴과 라프렐 린지 존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녀를 고등학교 테니스 팀 주장, 학생회 회장, 졸업생 대표를 역임한 스포츠와 학업에 뛰어난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젊은 여성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캐슬린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학업을 계속했으며,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간증과 자신의 믿음에 대한 헌신이 더욱 깊어졌다. 

1961년 보스턴에서 여름 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영적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젊은 하버드 학생인 헨리 베니언 아이어링의 눈에 띄게 되었다. 후에 그는 그녀의 선량함에 즉시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면, 내가 되고 싶었던 모든 선한 모습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들은 그다음 주에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으며, 1962년 7월 19일 유타 로건 성전에서 결혼했다. 

이들 신혼부부는 헨리가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팔로 알토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초기에 캐슬린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성전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평화를 구하면서 영적인 문제에 대한 신앙과 이해력이 향상됐다. 캐슬린과 헨리는 팔로 알토에서 9년을 보냈으며, 그곳에서 아들 헨리, 스튜어트, 매튜를 가졌다. 

1970년, 캐슬린은 감독으로 봉사하며 스탠퍼드에서 즐겁게 재직하고 있던 남편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커리어 방향에 관해 생각해 보라고 격려했다. 처음에는 그 제안에 당황했지만, 그는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으며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열린 마음으로 신중하게 고려하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헨리는 아이다호 렉스버그에 있는 릭스 칼리지(지금의 BYU 아이다호)의 총장직을 제의받았고, 이를 받아들였다. 가족은 아이다호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더 가까워졌으며, 캐슬린과 헨리는 스키, 골프, 테니스를 즐기며, 1975년에는 릭스 칼리지 복식 테니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1977년에 헨리가 교회 교육 총감으로 임명되자 아이어링 가족은 유타로 이주했다. 또 다른 아들 존과 두 딸 엘리자베스와 메리가 태어나면서 가족은 8명으로 늘어났다. 캐슬린의 주요 노력은 계속해서 남편을 지원하고 조언을 전하며 어머니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캐슬린이 어머니 역할에 전적으로 헌신했으며 그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책임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아들 헨리 제이 아이어링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매우 뛰어난 재능과 포부를 가진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자녀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캐슬린의 딸 엘리자베스 아이어링 피터스는 매일 집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기도했던 것을 기억한다. “매일 하는 기도는 우리가 하늘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소망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증거였습니다. 아이들의 나이가 너무 달라서 한 명씩 별도의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캐슬린은 수년 동안 교회에서 공과를 가르치고, 방문 교사로 봉사하며, 회중을 위한 소식지를 발행하는 등 많은 공식적인 교회 책임에서 충실하게 봉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용하고 덜 드러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성역을 베푸는 것으로도 기억된다. 그녀의 아들 매튜 제이 아이어링은 이렇게 회상했다. “어머니의 가장 중요한 봉사는 삶에서 어려움과 슬픔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조용한 연민이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조용히 ‘한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이 어머니의 사랑과 구주의 사랑을 느끼도록 도와주곤 하셨습니다.” 

캐슬린은 재능 있는 작가였으며 헨리의 커리어와 교회 봉사 전반에 걸쳐 편집에 관한 조언을 해 주었다. 나중에는 총관리 역원의 다른 아내들과의 월례 모임을 위해 공식 회의록을 작성했다. 캐슬린은 또한 가족의 추억을 기록하고, 가족 행사를 위한 대본을 썼으며, 월간 가족 소식지 공동 발행을 도왔다. 그녀는 청소년 소설을 한 권 썼으며, 1979년에 주 전체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 

헨리 비 아이어링은 1995년에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름을 받았으며, 캐슬린은 그가 2005년 암 수술을 받고 오랜 회복 기간을 거치는 동안과 2007년에 제일회장단으로 부름받았을 때에도 그를 지지하고 동반자로 있어 주었다. 이 시기에 캐슬린은 기억 상실로 고통받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부친도 나이가 들었을 때 같은 증상을 겪었었다. 그녀의 기억이 계속 사라지자, 아이어링 회장은 캐슬린을 돌보았으며, 모임을 하는 동안 그녀가 책을 읽고 안락의자에서 쉴 수 있도록 캐슬린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오곤 했다. 이 질병은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캐슬린의 사랑의 정신이 더욱 감미로워졌고 그녀가 나이가 들고 기억 상실이 진행됨에 따라 하늘과의 연결 고리가 더 강해졌음이 분명해졌음을 기억한다. 아이어링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캐슬린은 언제나 제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육과 신앙의 중요성을 믿는 여성인 캐슬린은 공개적인 말씀은 물론 자녀들과 함께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순간에서도 이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팔로 돌아가는 법이라고 자주 가르쳤다. 캐슬린은 어머니로서 자신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고 남편이자 영원한 동반자와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누렸던 밝고 충실하며 겸손한 여성으로 기억될 것이다. 

장례 절차는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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