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도

한국 교회 역사 고문으로 새로 부름 받은 김대연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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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교회 역사 고문으로 김대연 형제가 부름을 받았다. 한국 교회 역사 위원회는 교회 본부 역사부 산하 조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기록을 수집, 보존, 공유하는 일을 한다. 한국 교회 역사 위원회는 한 명의 교회 역사 고문과 여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3년부터 역사 전문가로 봉사한 김대연 형제는 전임 고문이었던 정태걸 형제 다음으로 역사 고문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김대연 형제는 한국 교회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오랜 기간 준비되었다. 그는 한국 교회 역사에 처음 호기심을 가졌던 1982년, 대학교 1학년 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저는 와드 청소년 역원으로 부름 받아, 세미나리 과정을 공부 중이었습니다. 교리와 성약 및 교회사 과정을 공부하던 중, ‘내가 사는 교회’라는 제목의 과제를 풀게 되었습니다. 한 페이지짜리 과제에는 선교부 조직 날짜, 스테이크 조직 날짜, 와드 조직 날짜, 역대 감독 및 지부 회장, 집회소의 역사 등을 기입하는 빈칸이 있었고, 저는 빈칸을 채우기 위해 교회 어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조사했습니다. 아직도 그 과제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 형제는 2013년부터 한국 교회 역사 전문가로서, 전임 고문이었던 서희철 형제와 정태걸 형제와 함께 봉사하며 역사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서희철 형제님과 한국 교회 헌납 6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 배너를 만들고, 몇몇 스테이크 대회를 방문하여 전시회를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2016년에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미국에서 열린 한국 교회 헌납 60주년 기념 귀환 선교사 대회까지 자비로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초기 한국 교회 선교사분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지요.” 

김 형제는 교회의 역사를 수집, 보존하고 회원들과 공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된 경험을 나누었다. 그는 역사 전문가로 봉사하던 2019년도에 국가의 기록물을 수집, 관리하는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서 1957년에 김호직 박사와 초기 선교사들이 제출했던 법인 신청서 원본을 발굴했다. “우리는 법인 신청서 원본을 확보하기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나라기록관을 검색하다 법인 신청서 제목을 찾았습니다!” 

그는 한국 교회의 법인 신청서 원본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전한다. “나라기록관을 방문하여 사서에게 검은색 서류철을 건네받아 첫 장을 넘기는데 가슴이 정말 뛰었습니다. 얇은 종이에 한글과 한자가 혼용되어 적혀 있어 읽기 쉽지는 않았지만, 저는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분들의 헌신과 노고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깬 개척자들이었습니다. 개척자들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과 교회를 사랑했던 초기 교회 개척자들의 이야기와 배경을 알고 이해할 때, 필멸의 신앙의 여정을 끝까지 견디겠다는 의지가 굳건해집니다.” 

김 형제는 교회 역사 고문이라는 부름으로 부담감이 엄습하지만, “교회 역사 사업을 통해 ‘주께서…얼마나 큰 일을 행하셨는가를’ 회원들이 기억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오[도록]” 도울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교회 역사 지도서, 3페이지) 아울러, 성도들이 교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 역사 수집에 적극적으로 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2022년은 종교교육원 개설 50주년이고, 2023년은 한국 최초의 스테이크인 서울 스테이크 조직 50주년입니다. 여기에 맞춰 역사 자료를 발굴하고, 수집하고,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또한 2025년에는 역사적인 1975년 한국 대회 5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1975년과 1980년의 지역 대회가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자료와 증언이 필수입니다. 많은 개척자분께서 기억을 가다듬고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회원들의 입에서 개척자들의 신앙 이야기가 자주 인용되고 또 거기서 교훈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연 형제는 1963년 12월 2일 경기도 송탄에서 출생했으며,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0년 10월 26일에 침례를 받고 교회로 개종했다. 그는 침례를 받은 후 서울 스테이크와 동대문 스테이크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했다. 1989년~1990년에 대전 선교부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했으며, 1998년부터는 직장 이전으로 천안에 거주하게 되면서 청주 스테이크 천안 와드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청소년 고문, 와드/스테이크 집행서기, 지부 회장, 대제사 그룹 지도자, 감독단 보좌, 고등평의원, 스테이크 회장단 등으로 봉사했다. 최근까지 서울 남 선교부 회장단 제2보좌로 봉사하다 역사 고문 부름을 받으며 해임되었다. 교회 부름과는 별도로, 2005년에 출간된 새로운 경전 번역 프로젝트에도 번역자로 참여했으며, 교회 헌납 50주년 역사 저술에도 참여했다. 

그는 서강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진공 기술, 반도체 장비 관련 엔지니어로 영국, 프랑스, 독일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30년간 몸담았다. 한국산업기술협회,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삼성전자를 비롯해 여러 기업과 학교, 기관에서 진공 기술 강사로 강단에 섰으며, 업계 저널에 기고 활동을 해왔다. 그는 선교사업 시절, 대전에서 공주 출신인 이윤화 자매를 처음 만났으며, 이들 부부는 1992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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