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도

시간 속으로: 역사와 추억의 발자취

제13화

최초의 선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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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대연 형제 (한국 교회 역사 고문)

삽화:

4. 최초의 한국 선교부 선교사 (1964) – 한인상

한인상 형제는 최초의 한국 선교부 선교사였다. 그는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한국의 유일한 선교부였던 한국 선교부에서 봉사하였다.

한국 선교부의 게일 이 카 선교부 회장은 몰몬경이 한국어로 번역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누구에게 몰몬경 번역을 맡겨야 할지 고민했다. 정대판 형제가 남긴 “한국 교회 초기 역사”에는 당시 고민의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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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해리스 장로가 한국인 선교사를 선정하는데 정 (대판) 형제와 한 인상 형제 둘을 놓고 기도하는 중이라고 한다, 뒤이어 한 형제를 선택했다고 알려 주었다. 정 형제는 지방부장으로서 선교회장 곁에 있어야 하고 몰몬경을 번역해야 하니 한 형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1]

게일 이 카 선교부 회장은 한인상 형제가 몰몬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도록 지명했다.

“당시 대구에서 봉사하고 있던 한 장로는 이 임무를 맡고 두려운 생각이 앞섰으며, 마음속 한 구석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하였다. …

결국 선교사 한 인상 장로는 짐을 챙겨 가지고 몰몬경을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2]

1964년 2월에 한인상 형제의 선교사 봉사 이후에 같은 해 6월에 황종섭 형제가, 1966년에 장병훈, 천낙서, 김성문, 이구남, 이정현, 서원, 황중열, 1967년에 송정섭 형제가 이어서 봉사했다.

 

[1]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한국 교회 초기 역사”, 정대판 (2012. 1. 12), 39쪽

[2] “최초의 한국인 총관리 역원이 되신 한인상 장로”, 성도의 벗, 1991년 7월호, 108쪽

5. 최초의 재미교포 선교사 (1968, 1970) - 에이브러험 (이원환), (안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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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이브러험 (Abraham Lee, 이원환)

미국인 및 소수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봉사하던 한국 선교부에 한인 2세 선교사가 합류했다. 8살 때 하와이로 이민 간 에이브러험 리(Abraham Lee, 이원환) 형제가 1968년 9월 29일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8살 때 도미한 그는 하와이에서 선교사로 봉사했고 후에는 매부가 된 분의 전도로 침례를 받아 현재는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몰몬이라면서 자기가 선교하는 동안 아버지도 회원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1]

이원환 형제는 1970년 한 신문사가 주최한 “외국인 남녀 한국어 웅변 대회”에서 4위로 입상했다.

“한국인 2세인 그는 1년전만 하여도 잃어버린 한국어를 기억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었는데 이 날 ‘한국계 미국 시민으로서의 나의 역할’이란 제목의 웅변을 통해 선교사 생활을 마친 후의 자기의 사명을 밝힌 바 있다.” [2]

2) (John Ahn, 안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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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안(John Ahn, 안승언) 형제는 경남고등학교 1학년(16세) 재학 중 침례를 받았다. 안승언 형제는 가족 중 유일한 회원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왔다.

“안승언 장로가 두 번째의 한국인 2세 선교사로 지난 (1970년) 4월 25일 한국 땅을 밟았다. 1958년 16살에 하킨스 장로에게 침례를 받고 다음 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 그는 가족과 떨어져서 뉴욕, 프로보, 신시나티 등을 전전하며 전자공학의 공부를 계속하다 작년말 오하이오 대학에서 … 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

(선교사) 부름을 받고 자기의 결심을 부모님에게 전했을 때 회원이 아닌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지만 축복사의 축복 기록을 보고 자기의 결심을 굳혔다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감에 불타 있었다.” [3]

10대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주일학교 교사, 상향회 역원, 스테이크 장로정원회 회장을 봉사한 안승언 형제는 1970년 12월 17일 배영천 형제의 뒤를 이어 제2대 남부지방부 회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지방부 회장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여 저활동 회원의 활동촉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4]

6. 최초의 한국어 교육을 받은 외국 선교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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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에게 선교 지역의 풍속과 언어를 소개하는 2개월 코스의 학교가 하와이 교회 대학과 아이다호주 릭스대학, 부리감 영 대학에 설치되어 지난 (1969년) 4월 10일 그 첫 졸업생을 내었다. 태평양 지역과 아세아지역의 언어는 하와이 교회 대학에서, 그리고 유롭과 남미 지역의 언어는 부리감 영 대학에서, 스칸다나비아 언어는 릭스 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지난 4월 11일 그곳을 졸업한 9명의 선교사가 김포 공항에 도착하여 선교부 선교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선교사들은 그간 소정의 선교부에서의 교육을 마치고 4월 15일부터 각 지역에서 선교 사업에 봉사하고 있다.” [5]

7. 최초의 자매 선교사 (1972) – 강문자, 전종숙, 함현숙, 허영애

“1971년 가을, 우리 선교부 회장단은 협의 끝에 한국인 자매를 전임 선교사로 불러야 한다는 것을 교회 본부 지도자들에게 제안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 당시에는 오직 형제들만 봉사하고 있었다. 1972년 10월 10일, 최초의 한국인 자매들이 선교사 봉사를 시작했다. … 이들 자매들은 처음에는 성북 지부와 청운 지부에서 봉사했다.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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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부 최초의 숙녀 선교사(lady missionary)가 오늘 선교 본부에 와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전종숙(군산 지부), 허영애(전주 지부), 강문자(부산 지부), 함현숙(군산 지부) 자매이며, 정말 경건하지만 그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곳 한국 선교부에서 주님의 사업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7]

“이들 새로운 자매들은 너무 열성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봉사해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고 더 많은 한국인 자매들과 나아가 미국인 자매들을 한국에서 봉사하도록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1973년 8월에 최초의 미국인 자매 선교사인 타마라 그리피스와 로산느 테일러 자매가 서울에 도착했다.” [8]

그리피스 자매는 함현숙 자매와, 그리고 로산느 자매는 강문자 자매와 동반자로 서울 와드에서 선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9]

8. 최초의 보건 선교사 (1975, 1976) – 손더스, 피쳐, 한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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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더스 자매와 피쳐 자매는 한국에서 봉사한 최초의 보건 선교사로서, 1975년에 한국에 왔다.

“두 보건 선교사가 한국 서울 선교부에서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 두 선교사는 솔트레이크시 출신의 달라 디 손더스 자매와 유타주 로간 출신의 앨리스 피쳐 자매이다. 이 두 자매는 간호학을 전공하였으며 한국 사람들의 건강 및 복지를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다.” [10]

한귀순 자매는 한국에서 봉사한 최초의 한국인 보건 선교사였다.

“지난 (1976년) 2월 19일 서울 스테이크 제5와드 소속인 한귀순 자매가 보건 선교사로 부름 받았다. 서울 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한 자매는 보건 선교사로 일하면서 건강 교육 프로그램을 한국 성도들에게 실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11]

이들 보건 선교사들은 1) 스테이크 대회에서 건강의 기본 원리를 발표하고, 2) 가정의 밤 시간에 기본적인 건강 교육을 하고, 3) 선교부의 복지 사업 향상에 기여하고, 4) 구도자들에게도 건강 교육을 실시했다.[12]

 

[1] “한인 2세 선교사로”, 성도의 벗, 1968년 11월호, 28쪽

[2] “이원한 장로 웅변대회 입상”, 성도의 벗, 1970년 4월호, 32쪽

[3] “한인2세 선교사로”, 성도의 벗, 1970년 6월호, 37쪽

[4] “Korean Mission Journals, John Seugun Ahn -1970 to 1972”, p. 237~238

[5] “한국어 교육받은 선교사 도착”, 성도의 벗, 1969년 6월호, 31쪽

[6] Korean Mission Journals, p 304

[7] “The official Korea Mission Records: 10, Oct, 1972 entry”

[8] Korean Mission Journals, p 304

[9] “새로운 선교사 소개”, 성도의 벗, 1973년 12월호, 49쪽

[10] “보건 선교사”, 성도의 벗, 1975년 11월호, 32쪽

[11] “한 귀순 자매 보건 선교사로 부름받음”, 성도의 벗, 1976년 4월호, 32쪽

[12] “보건 선교사의 활동”, 성도의 벗, 1976년 4월호,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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