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스미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분의 사도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교리와 권세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교도인 로마 제국으로부터 조직적인 박해와 적의에 직면해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4세기가 되자 본래의 그리스도의 교회와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하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권세를 상실하자 오랜 기간의 영적 어둠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1820년 봄, 지구의 다른 편에서 하나님은 14세의 조셉 스미스라는 소년에게 나타나셨고, 그 사건으로 고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상에 “회복”하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 Joseph Smith, the first president of the Church, organized the new religion on April 6, 1830, in Fayette Township, New York.
- Joseph Smith Kneeling in the Sacred Grove
- Sacred Grove
- Carthage Jail
- EB Grandin Building in Palmyra
- Pioneer Reenactment - 1997
- Nauvoo, Illinois Temple
| Temple Square is always beautiful in the springtime. Gardeners work to prepare the ground for General Conference. © 2012 Intellectual Reserve, Inc. All rights reserved. | 1 / 2 |
조셉 스미스는 1805년 12월 23일 미국 동북부에 있는 버몬트 주 샤론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그는 가족들과 함께 뉴욕 주 팔마이라의 농촌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1820년 그곳에서는 종교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다양한 종교의 상충되는 주장으로 혼란에 빠진 조셉은 인도를 구하기 위해 성경을 펼쳐 들었고, 거기서 스스로 “하나님께 구하라”는 구절을 접하게 됩니다.
가족 농장 인근의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조셉은 무릎 꿇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외딴 곳에서 성서 시대 이래 가장 극적인 계시로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소년에게 나타나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는 현존하는 어떤 교회에도 속하지 말라는 명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래 조직하신 교회를 그 모든 진리와 신권 권세와 함께 지상에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년 뒤, 조셉 스미스와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된 계시와 극적인 방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1830년 4월 6일 뉴욕 주 페이에트에서 공식적으로 조직되었습니다.
몰몬경: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
1823년 9월 조셉은 수 세기 전 미대륙에 살았던 한 고대 선지자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모로나이라는 이름의 이 부활한 사람은 조셉에게 팔마이라 인근의 언덕으로 가라고 지시했으며, 그곳에서 땅 속에 묻힌 고대 아메리카 문명의 종교적 역사가 새겨진 금속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조셉은 그 기록을 취하여 번역하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몰몬경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 이름은 그것을 모아서 엮은 고대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몰몬경: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은 1830년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몰몬경은 기원전 약 2,200년부터 기원후 421년 사이에 고대 아메리카 문명에 관한 종교적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후 미대륙에 나타나서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역에 대한 목격담도 나와 있습니다.
신권 권세의 회복
예나 지금이나 사도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이름으로 행할 권세를 받았습니다. 초기 십이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이 신권 권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나자 사도의 권세는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1829년에 일어났던 이 신권의 재확립은 회복의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1829년 5월, 자신을 침례 요한이라 밝힌 부활한 존재가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나타나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침례를 베풀고 다른 의식을 수행할 권세가 있는 아론 신권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분의 초기 사도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조셉과 올리버에게 나타나 사도직의 권세와 더불어 멜기세덱 신권, 곧 보다 높은 신권을 주었습니다. 신권 권세의 회복과 더불어 조셉은 여섯 명의 초기 회원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성장 및 반대
고대 교회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도 선교사 교회로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중반 개종자들은 미국에 있는 회원들과 함께 모이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유럽 및 미국 동부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곧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점점 악화되는 소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는 그 본부를 뉴욕에서 오하이오로, 그런 후 다시 미주리로, 나중에는 일리노이로 옮겼습니다. 1839년 후기 성도들은 미시시피 강 경계의 척박한 늪지대에 나부(일리노이)라는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지도 아래 성도들은 늪의 물을 빼고, 아름다운 집과 비옥한 농장 및 사업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1844년 나부의 인구는 시카고와 맞먹을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주변 지역사회 내에는 점점 늘어가는 의혹과 불안으로 극심한 동요와 불신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이웃 지역 신문들은 후기 성도 근절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정점에서 조셉 스미스와 그의 형 하이럼은 일리노이 주 카테지 인근에서 무장 폭도들에게 총을 맞아 죽었습니다.
브리검 영과 서부 이동
폭도들은 그 지역의 후기 성도 정착지를 공격해 농작물을 태우고 집을 부수며 사람들을 몰살하겠다고 위협을 가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이동해야 할 시기가 임박했음을 알았습니다. 이번 여정은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견지명이 필요하며 또 가장 규모가 큰 여정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선임 십이사도로서 브리검 영은 조셉 스미스의 뒤를 이어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1846년 2월 그는 얼어붙은 미시시피 강을 건너 사람이 살지 않는 아이오와 지역으로 후기 성도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아이오와를 가로질러 현재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 인근의 윈터쿼터스라는 지역에 정착지를 세웠습니다. 이 공동체는 곧 강 양편으로 수백 개의 숙소가 생겨날 정도로 확장되었으나 그들 중 상당수는 그저 움막이나 뗏장을 떠서 지은 허름한 오두막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셉 스미스가 처음에 제안했던 계획을 좇아 브리검 영은 광활한 광야를 건너 서쪽으로 2,100킬로미터되는 거리의 록키 산맥으로 가는 역사적 이동을 위해 당시 17,0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준비시켰습니다. 최초의 개척자 부대는 다음 해 초봄에 윈터쿼터스를 떠나 1847년 7월 24일 솔트레이크밸리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몇 년 동안 수천 명의 다른 후기 성도들이 새로 만든 피난처를 찾아 미국 대평원을 힘겹게 건넜습니다. 일부는 마차를 타고 평원을 횡단했으며, 다른 이들은 작고 가벼운 손수레를 끌고 갔습니다. 10개의 손수레 부대가 다음 4년 동안 미국 평원을 횡단했습니다. 그중 여덟 부대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여정을 마쳤지만 나머지 두 부대는 수백 명이 굶주림, 피로, 추위 등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는 비극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솔트레이크밸리에 도착한 뒤 수년 간 브리검 영은 교회 회원들에게 서부 지역에 정착지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개척자들은 앨버타 남부부터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약 2,170킬로미터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총 600곳이 넘는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현대로 접어들어
1896년 1월 4일 유타가 미국의 45번째 주가 되었을 때 교회 회원 수는 총 75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중 대다수는 유타에 살았으며, 소수는 미국 서부의 개척지, 앨버타 남부, 멕시코 북부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1930년에 이르자 교회 회원의 절반 정도만이 유타에 거주했으나 나머지 대부분은 여전히 북미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20세기 내내 교회 회원수는 1947년에 백만, 1963년 2백만, 1971년 3백만, 1978년 4백만 등으로 면에서 이정표를 세워나갔으나 그때까지도 대다수의 회원들은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눈에 띠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타에 거주하는 교회 회원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교회 회원은 2010년에 1,500만에 이르렀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미국 외 국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